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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부른 독립운동가 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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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온나눔 작성일17-08-15 13:47 조회1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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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준 선생(사진출처: 국가보훈처)



<문재인 대통령이 부른 독립운동가 5인>

광복 72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언급하며 넋을 기렸다.

문 대통령은 15일 오전 경축사에서 "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이라며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독립투사는 의사 이태준 선생과 기자 장덕준 선생,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자 김용관 선생,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이다.

1. 이태준
대암 이태준 선생은 우리에게 '몽골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태준 선생은 경남 함안군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의사이자 독립 운동가다. 의학도 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을 돌봤고, 중국으로 망명해 본격적으로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이태준 선생은 1914년 몽골로 건너가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열었다. 현지에서 전염병 퇴치에 전념하며 '붓다 의사'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몽골 국왕의 주치의가 됐고, 여러 독립단체에서 활발히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1980년 건국공로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각각 이태준 선생에게 수여됐다. 2001년 몽골에서는 이태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기념 공원을 건립하기도 했다.

2. 장덕준
장덕준 선생은 최초의 순직 기자다. 1892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920년 세상을 떠난 장덕준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언론인, 작가로 활동했다.
특히, 장덕준 선생은 동아일보 창립 주창자 중 한 명으로, 1919년 10월 초 제호를 동아일보로 한 신문발행허가를 신청하고,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장덕준 선생은 1920년 11월 만주 간도에 종군기자이자 특파원으로 취재차 방문했다가 행방불명된 뒤 사망 처리돼 최초의 순직 기자가 됐다.

3. 남자현
남자현 여사는 1872년 경북 안동군에서 태어났다. 19세때 결혼했으나 남편은 왜군과 전투 중 사망했다. 남자현 여사가 46세때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구국에 나섰다.
3·1운동 직후인 3월 9일 그는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남자현 여사는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군사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독립군의 어머니'라는 별명은 여기서 얻게 됐다.
무장단체 뒷바라지에 머물지 않았다. 남자현 여사는 북만주 일대 농촌에 12개의 교회를 건립했고, 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 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권신장에 기여했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맡은 여성 독립군의 모티프가 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4. 김용관
김용관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명과학대중화를 이끈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김용관 선생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고등교육을 받아 일본 유학 중 일본의 근대화의 뿌리가 발명과학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191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김용관 선생은 1933년 6월 발명과학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명과학 잡지였다.
발명과학의 대중화에 투신했던 김용관 선생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조선총독부에 체포돼 투옥되기도 했다. 김용관 선생은 196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5. 나운규
나운규 선생은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이자 영화감독이다. 특히, 그가 1926년 만든 '아리랑'이 유명하다.
나운규 선생은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명동중학에서 공부하던 중 일제의 탄압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북간도와 만주 지방을 유랑했다. 1919년 3월, 나운규 선생은 회령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고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출소한 이후 나운규 선생은 극단 예림회에 가입해 배우로도 활동했다. 이후에는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 들어가 아리랑을 제작했다.
아리랑 외에도 나운규 선생은 독립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랑을 찾아서', '벙어리 삼룡', '잘있거라' 등을 제작해 조선의 초창기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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